
여의도에서 벚꽃이 피고 지는 건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다. 한 사람이 통과해 온 세월의 흔적이다. 부모님 손을 잡고 걷던 유년기, 땡땡이 리본을 달고 교복 치맛자락 팔랑이며 걷던 여고 시절. 그리고 흩어졌던 동네 친구들이 다시 모여 어설프게 술잔을 부딪치던 스무 살의 봄밤까지. 이 길 위에는 나의 지난 시간들이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다들 각자의 궤도로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이 섬에 남았다. 이쯤이면 벚꽃 시즌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나. 여행기자로 바빴던 30대, 베를린에서 살았던 7년 간은 이 길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3년 전, 한국에 다시 돌아와 잠깐 멈춰 서 바라보니, 벚꽃이 새삼 너무 예뻐서.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과 반려견 두마리를 보며 ‘우리가 이 풍경을 언제까지 함께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부러 길을 나서곤 했다.
하지만 올봄엔 마침 바쁜 일이 겹치기도 했고, 사무실 창밖으로 매일 같이 몰려드는 상춘객, 빵빵대는 자동차 경적과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가 뒤엉키는 모습을 보곤 굳이 그 길을 나설 마음이 들지 않더라.
그러다 꽃잎이 거센 바람에 흩날리며 우수수 떨어지던 마지막 날 밤. 아, 그제야 부랴부랴 반려견 호두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섰다.


열네 살 호두는 이제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같은 곳을 빙빙 돌거나 안겼다 뛰어내리기를 반복하며, 치매라는 낯선 시간을 앓고 있다. 코나 발바닥을 건드리면 매섭게 으르렁대던 말티즈 특유의 까칠함도 옛말이 됐다. 제 본성마저 잊어버린 채 그저 순하게만 안겨 있는 녀석을 보면 마음 한켠이 아릿해진다.
“호두야. 벚꽃이야. 예쁘지? 꽃향기는 어때? 냄새는 맡을 수 있지?
우리 작년에도 이 길을 걸었는데, 다시 오니 어때?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겠지만, 이 길을 걷던 순간도 곧 잊겠지만
그래도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기억해 줄래?
내년 봄엔 벚꽃이 피는 첫날, 그때 꼭 다시 오자, 호두야.”
바람에 벚꽃비가 날리던 2026년 4월 5일 부활절의 벚꽃 엔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