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뜨겁다. 이번 주 서울 미식주간으로 도시 곳곳에서 맛있는 행사가 펼쳐진다. 국내외 유명 셰프들이 한데 모여 서울 전체가 들썩이는 가운데, 한 사람이 유독 눈길을 끈다. 바로 스페인의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à)다.
여행기자로 활동하며 세계의 음식 문화를 취재해온 지난 20여 년간, 나는 그의 이름을 수없이 써왔다. 바르셀로나와 산세바스티안을 오가며 스페인 미식 혁명을 목격했고, 프랑스가 군림하던 미식 지도를 스페인으로 옮겨놓은 이 혁명가를 여러 차례 소개했다.
언젠가는 직접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가 서울에 왔다. 페란 아드리아라는 인물을 다시 살펴볼 기회다.

질문으로 시작된 혁명
페란 아드리아가 미식계에 끼친 영향은 한마디로 ‘요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정의를 재설정했다는 데 있다. 그는 전통적인 프랑스 요리의 권위와 관습에 도전했고, 요리에 과학적 분석과 예술적 창의성을 결합한 ‘기술-개념 요리(Technique-Concept Cuisine)’를 창시했다. 흔히 분자 미식학(Molecular Gastronomy)으로 불리지만, 페란 아드리아는 이 용어 대신 식재료의 본질적인 맛은 유지하되 형태와 질감을 완전히 뒤바꾸는 ‘해체주의(Deconstruction)’ 철학을 강조했다. 올리브처럼 보이지만 입안에서 올리브 주스가 터지는 ‘액체 올리브’, 재료의 맛만 남긴 가벼운 ‘거품(Airs)’—이런 요리들은 미식가들에게 전에 없던 지적 유희를 선사했다.
스페인 미식의 르네상스
페란 아드리아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를 중심으로 스페인 바스크와 카탈루냐 지역은 미식의 전진 기지가 됐다. 무가리츠의 안도니 루이스 아두리스(Andoni Luis Aduriz), 엘 셀러 데 칸 로카의 로카 형제 같은 혁신적인 셰프들이 함께 ‘스페인 미식 혁명’을 이끌었다.
그렇게 전 세계 미식가들을 스페인으로 이끌었던 엘 불리가 2011년 홀연히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엘 불리 출신 셰프들이 증명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디스프루타르(Disfrutar)는 수제자였던 오리올 카스트로, 에두아르 카트루치, 마테우 카사냐스 세 명의 셰프가 이끄는 레스토랑으로, 엘 불리의 창의적 정신을 계승하며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방콕의 가간 아난드(Gaggan Anand)는 엘 불리에서 분자 요리 기법을 배워 인도 길거리 음식과 가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로그레시브 인도 요리’를 개척했다. 그는 올해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2025 시상식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식의 전승
2011년, 페란 아드리아는 이제 기술이 아닌 철학을 전수할 때임을 깨달았다. 엘 불리 재단(elBullifoundation)을 세운 그는 요리를 ‘요리법’이 아닌 ‘지식’과 ‘문화’로 재정의하며,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그 지식을 다음 세대와 공유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다. 페란 아드리아는 단순히 레시피나 기술을 남긴 것이 아니다. ‘요리사는 예술가이자 과학자이며 철학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는 셰프들에게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며, 식재료와 기술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자세를 요구한다.
두 거장의 만남
지난 주말, 흥미로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페란 아드리아가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서 정관 스님을 방문한 것이다. 해체주의를 통해 미식을 재정의한 셰프와, 수행으로서의 요리를 실천하는 스님. 놀랍게도 그들의 철학은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재료 본연의 성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요리할 수 있다.”
페란 아드리아는 재료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요리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정관 스님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며 ‘어떻게 먹는가?’를 묻는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했고, 음식을 통해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정확히 맞닿아 있다.
서울에서 던진 질문
오늘 한식 컨퍼런스 연단에 선 페란 아드리아는 또 많은 질문을 남겼다. 한식의 창의적 발전에 대해,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의 방향에 대해. 그의 강연과 패널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한식을 어떻게 연구하고 기록할 것인가. 전통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그리고 그 지식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할 것인가. 해를 더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한식 컨퍼런스가, 우리 앞에 놓인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