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는가를 넘어, 어떻게 먹는가에 대하여
2025년 10월, 예일대학교가 정관 스님을 ‘Global Table Fellow’로 초청했습니다.
맥밀란 국제문제연구센터, 예일 슈워즈만 센터, 그리고 예일 호스피탤리티가 협력한 이 프로그램은 “지속가능성, 건강, 문화, 그리고 공동체 간의 연결”을 조명하기 위해 전 세계 요리 사상가들을 초청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정관 스님은 그 세 번째 펠로우로 선정되었죠.
방문 기간 동안 정관 스님과 그의 셰프들은 예일 대학 및 뉴헤이븐 커뮤니티와 함께 사찰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식사를 나누고, 10월 22일에는 정관 스님과의 라이브 대화와 Q&A가 포함된 디너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학술 기관 중 하나가 왜 한국의 스님을 초청해 음식을 이야기하려 했을까요?

요즘 해외에서 한국의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K-비건, K-웰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채식 문화가 주목받으면서, 그 중심에 사찰음식이 자리 잡고 있어요.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 시즌3>에 정관 스님이 출연한 이후, 사찰음식은 단순한 ‘한국식 채식’을 넘어 하나의 철학이자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미슐랭 가이드가 주목하고, 세계적인 셰프들이 영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넘어, 사찰음식에는 자연과의 연결, 제철 식재료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음식을 통해 마음을 살피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일대가 주목한 것은 레시피가 아니라 “지속가능성, 건강, 문화, 공동체”라는 가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베를린에서 K-푸드를 소개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기도 해요.
사찰음식이 특별한 이유
물론 세상에는 맛있고 건강한 다양한 채식 요리가 존재합니다. 지중해식부터 중동, 인도의 채식 문화까지. 각각 고유한 철학과 역사를 지니고 있죠.
하지만 사찰음식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음식을 만드는 과정부터 먹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공양(供養)’의 태도 때문입니다.
공양이란 공경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는 것을 의미해요. 사찰에서는 ‘식사한다’고 말하지 않고 ‘공양한다’고 표현합니다. 음식이라는 대상보다 먹는 나의 마음가짐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무엇을 먹는가’를 넘어 ‘어떻게 먹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입니다.

사찰음식의 세 가지 마음
사찰음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담긴 세 가지 핵심 철학을 알아야 해요.
1. 청정한 마음(淨)
인공조미료나 첨가물 없이,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사용합니다. 사찰에서는 오신채(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도 쓰지 않아요. 이들이 수행에 방해가 되는 강한 자극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죠.
대신 된장, 간장 같은 발효 양념과 제철 채소 본연의 맛으로 음식을 만듭니다. 처음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계속 먹다 보면 재료 하나하나의 고유한 맛이 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어요.
2. 자비로운 마음(慈)
모든 생명에 감사하며, 필요한 만큼만 먹는 ‘소식(小食)’을 실천합니다. 사찰에서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을 기본 예법으로 여깁니다. 공양간(주방)에서 음식을 덜어올 때부터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만큼만 가져오고, 그것을 깨끗이 비우는 거죠.
이것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그 음식을 위해 희생된 생명과 그것을 기르고 요리한 모든 이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3. 수행하는 마음(修)
재료를 재배하는 일부터 조리, 식사 예법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의 연장선으로 여깁니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한 정관 스님의 말이 마음 깊숙이 새겨졌지요.
“요리는 수행의 일부이고, 밭에서 채소를 기르는 과정부터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모든 과정. 그리고 그것을 씻고, 다듬고, 조리하고, 상에 올리는 일. 심지어 설거지를 하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수행이라는 거예요.

마음챙김(Mindfulness)의 실천
음식을 대할 때는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사람의 노고와 자연의 소중함, 음식을 베풀어준 이의 공덕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사찰에서는 공양 전에 ‘오관게(五觀偈)’라는 게송을 외워요. 공양게송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하고,
내 덕행이 이 공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가 헤아린다.”
이것은 요즘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마음챙김(Mindfulness)’의 실천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현재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내가 하는 행위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는 것. 사찰음식은 수백 년 전부터 이것을 실천해온 셈이죠.
K-비건 열풍 속 사찰음식의 위치
한국식 채식, 즉 K-비건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두부 요리, 나물 반찬, 비빔밥 같은 다양한 한국 채식 문화가 소개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사찰음식은 단순한 레시피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K-비건의 여러 갈래 중에서 사찰음식이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맛있는 채식’을 넘어 완성된 하나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지속가능성, 제로 웨이스트, 로컬 푸드, 슬로우 푸드, 마음챙김—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모든 가치가 이미 사찰음식 안에 녹아있어요.
그래서 사찰음식은 K-비건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K-푸드를 이야기하며
저는 음식을 통해 세계와 공감하고 연결될 수 있다고 믿어요.
여행기자로 20여 년간 세계 곳곳을 취재하면서, 베를린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점점 더 음식 콘텐츠에 집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음식만큼 문화를 직관적으로, 감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가 또 있을까요?
베를린에서 K-푸드 행사를 기획할 때마다 저는 “한국 음식은 맵다”, “김치가 대표다” 같은 클리셰를 넘어서고 싶었어요. 물론 그것들도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철학과 문화를 함께 전하고 싶었거든요.
예를 들어, 김치 하나를 소개하더라도 단순히 ‘발효 저장 음식’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김장철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김치를 담그며 나누는 공동체 문화, 계절의 변화에 맞춰 음식을 저장하고 나누는 지혜,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성’을 이야기하는 거죠.
사찰음식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의 비건 음식”이라고만 소개하면, 그저 여러 채식 요리 중 하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공양’의 마음, ‘수행’으로서의 요리, ‘마음챙김’의 실천을 함께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국경을 넘는 진정한 언어
화려한 기교나 거창한 이름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과 그 안에 담긴 정성이야말로 국경을 넘어 통하는 진정한 언어가 아닐까요?
미쉐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의 화려한 플레이팅도 물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머니가 텃밭에서 직접 키운 상추에 된장 하나 얹어 내밀 때,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더 깊이 와닿더라고요.
베를린에서 만난 한 독일인 친구가 이런 말을 했어요. “한국 음식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 이 음식을 만든 사람이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야.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돌보는 느낌이랄까.”
그게 바로 ‘정성’이고, ‘마음’이고, 사찰음식에서 말하는 ‘공양’의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사찰음식을 통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
K-푸드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금, 저는 단순히 “한국 음식이 맛있다”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음식을 대하는 태도, 재료를 존중하는 마음, 계절과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는 지혜, 그리고 음식을 통해 사람과 연결되는 방식. 이런 것들이야말로 진정한 K-푸드의 가치가 아닐까요?
사찰음식은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나의 완전한 철학 체계예요.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한국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성, 마음챙김, 공동체, 웰빙 같은 전 세계가 지금 고민하는 주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K-비건, 사찰음식.
이 단어들이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우리가 음식을,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무엇을 먹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먹는가는 더 중요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