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이 부담이 되는 시대
2025년 10월, 뉴욕 스카이프트 서밋에서 유럽 관광청 연합이 발표한 한 문장이 여행업계를 흔들었다.
“책임감 있는 선택은 부담이 아니라, 더 보람 있는 여행 방식으로의 업그레이드를 뜻합니다.”
36개국 유럽 관광청과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Unlock an Unexpected Upgrade’ 캠페인. 이 캠페인이 특별한 이유는 ‘지속가능한 여행’이라는 말에서 의무감과 죄책감을 걷어내고, 대신 ‘예상치 못한 보상’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비행기를 덜 타야 한다는 것, 유명 관광지는 이미 포화 상태라는 것, 현지 소상공인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했다. 왜일까?
‘해야 한다’는 말이 주는 무게 때문이다. 책임은 때로 설렘을 가리고, 윤리는 자유를 제약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얻게 될 것을 상상하라: 행동 과학이 제안하는 전환
유럽의 이번 캠페인은 행동 과학과 넛지 이론에 기반한다. 사람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열하는 대신, ‘얻게 될 것’을 보여준다.
더 적은 인파(Fewer crowds). 성수기를 피해 여행하면 당신은 베네치아의 골목을 평온히 산책할 수 있다.
더 깊은 연결 (Deeper connections). 대형 호텔 대신 현지인이 운영하는 작은 숙소를 선택하면, 그곳 주민의 삶과 이야기가 당신의 여행에 녹아든다.
더 진정한 경험 (More authentic experiences). 파리나 로마 대신 리옹이나 볼로냐를 선택하면, 당신은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가 된다.
더 나은 가치 (Better value). 프라하 대신 브르노를, 리스본 대신 코임브라를 선택하면 같은 예산으로 더 풍성한 경험을 얻는다.
상상해보자.
한 장의 인증샷을 위해 인파 속에서 기다리는 대신, 이른 아침 안개 낀 골목을 혼자 걷는 고요를 택한다. 긴긴 줄을 드리운 유명 레스토랑 대신, 할머니가 40년간 지켜온 작은 트라토리아의 문을 연다. 그곳에서 음식은 메뉴가 아니라 이야기가 되고, 여행은 구경이 아닌 교감이 된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부티크 호텔이나 게스트 하우스에 머문다면? 주인은 당신에게 지도에 없는 골목길을 알려주고, 저녁에는 함께 와인을 마시며 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들려준다.
이것이 캠페인이 말하는 ‘예상치 못한 업그레이드’다. 윤리적 선택이 곧 프리미엄 경험이 되는 시대. 더 이상 책임 여행은 희생이 아니라 투자다.
세 가지 원칙: Respect, Reduce, Redistribute
캠페인은 추상적인 구호 대신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한다.
지역 존중(Respect the Local). 문화와 전통,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존중하라. 당신의 여행이 그들의 삶을 침범하지 않도록.
영향 최소화(Reduce the Impact). 비행기 대신 기차를, 렌터카 대신 걷기를.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선택이 당신에게 더 천천히 흐르는 시간과 풍경을 선물한다.
혜택 재분배(Redistribute the Benefits). 대형 체인 대신 현지 소상공인을 지원하라. 당신의 소비가 지역 경제를 살리고, 그 경제가 다시 당신에게 진정성 있는 환대로 돌아온다.
이 세 가지 원칙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천 가능하다.



숨겨진 유럽이 건네는 초대장
캠페인은 오버투어리즘에 시달리는 유명 도시 대신, 진정한 경험을 제공하는 대안 도시를 제안한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유럽의 녹색 심장이다. 차량 통행이 제한된 이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당신은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이탈리아 북부의 볼로냐는 슬로푸드 운동의 고향으로, 이곳에서 즐기는 미식은 문화이자 삶의 방식이며 지역 경제를 살리는 철학이 된다.
베를린에서 고속열차로 2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 함부르크는 쇠락한 항만 지역을 25년에 걸쳐 재생시킨 물의 도시다. 철도와 수운 교통의 조화 속에서 저탄소 여행의 우아함을 보여준다.
노르웨이에서 두번째로 큰 베르겐은 피요르의 시작점이다.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순간, 자신만의 속도를 되찾을 것이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그곳에서 당신은 골칫거리 ‘관광객 취급’을 받지 않는다. 당신은 그저 그곳에 머무는 사람이 된다.


업그레이드의 시대가 온다
유럽의 ‘Unlock an Unexpected Upgrade’ 캠페인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다. 이것은 여행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선언이다. 이 캠페인은 우리에게 말한다. ‘책임 있는 여행’은 희생이 아니며, 더 나은 경험을 향한 가장 지적이고 세련된 방식이라고.
여행을 향한 질문이 바뀌어가고 있다.
‘어디로(Where)’ 가는가가 아니라, ‘왜(Why)’ 떠나는가.
그리고 그 여정이 ‘어떻게(How)’ 나를,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2026년, 이 캠페인은 중국, 일본, 브라질, 호주로 확대된다. 전 세계가 ‘책임 여행’이라는 새로운 표준(Next Standard)을 받아들이는 순간, 준비되지 않은 시장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무게가 아닌 설렘으로, 제약이 아닌 가능성으로, 포기가 아닌 업그레이드로.
“Travel responsibly. Unlock an unexpected upgrade.”
책임감 있게 여행할 때, 당신의 여정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업그레이드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