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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인사이트] 금융 허브의 탄생: 왜 한국의 월스트리트는 여의도에 자리 잡았나?

여의도를 깊게, 한번 파헤쳐 보겠습니다.

대한민국 자본의 맥박이 뛰는 섬, 여의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곳을 ‘한국의 월스트리트’라 부른다. 원래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에 자리한 금융 지구로, 세계 금융의 심장이자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여의도 역시 그와 닮았다. 굵직한 금융 기관들이 모여 들고, 끝없이 자본이 순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이 처음부터 주어진 것은 아니다. 한때 모래 벌판에 불과했던 이 섬은 어떻게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이 되고 아시아의 허브를 꿈꾸게 되었을까? 그 과정 속에는 도시 계획의 전략과 시대적 흐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사진 출처: news1

허허벌판에서 그린 청사진
1960년대 여의도는 강바람만 휘이 휘이 부는 모래섬에 불과했다. 서울이 팽창하면서 새로운 공간이 필요해졌고 박정희 정부는 여의도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1967년 시작된 한강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68년 윤중제 제방이 완공되면서 섬은 도시의 캔버스로 변했다.
정부와 도시계획가들은 여의도를 정치, 금융, 언론 기능까지 아우를 수 있는 신도심 거점으로 구상했다. 파리가 1958년부터 부도심으로 조성한 라 데팡스, 런던이 1980년대 낡은 항만 지역을 금융 중심지로 만든 도크랜즈 보다도 더 과감한, 여의도는 권력과 미디어, 자본을 한 공간에 집중시킨 독특한 도시 실험장이었다.

권력의 이전: 국회와 방송사 입주
1975년 국회의사당이 여의도로 옮겨오면서 정치 권력의 새로운 심장이 생겼다. 곧 KBS를 비롯한 주요 방송사들이 자리를 잡으며 정치와 미디어의 중심지가 완성됐다.
서울의 기존 중심지였던 광화문과 종로 대신 여의도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과밀화된 도심을 분산시키고, 넓은 한강변 부지를 확보하며, 서울 서쪽과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정치와 미디어가 한곳에 모이자 정책 결정과 정보 전달이 빨라졌고, 변화의 속도도 가팔라졌다.

자본의 집결: 증권거래소와 금융사 합류
여기에 금융이 뒤따랐다. 1979년 증권거래소가 명동에서 여의도로 이전하자 증권사들이 몰려들었다.
1980년대 들어 은행, 보험, 자산운용사까지 합류하며 여의도는 명실상부한 금융 허브로 우뚝 섰다. 이는 정부가 계획적으로 만든 결과라기보다는, 권력과 미디어가 집중된 곳에 자본이 흡수된 결과였다. 또한 잘 닦인 교통망과 인프라는 금융 기관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여 주었고, 이는 다시 여의도의 경쟁력이 됐다.

여의도의 성장은 도시 계획과 시대적 흐름이 맞물려 만든 산물이다. 허허벌판에서 시작해 정치와 언론, 금융이 차례로 모이며, 오늘의 여의도가 되었다. 완벽하게 설계된 결과라기보다, 권력과 정보가 불러낸 자본의 자연스러운 집결. 그 자체로 도시 진화의 압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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