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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매거진] 나만의 아지트 _ 케익바

베를리너로 살던 시절,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이면 마치 꼭 치러야 할 의례처럼, 나는 베를린에서 가장 고급스럽기로 손꼽히는 백화점을 찾았다. 진귀한 물건을 휘이휘이 구경한 후 디올 립스틱이든,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로열코펜하겐의 찻잔이든, 헤이의 볼펜 한 자루든 쇼핑백 하나 살랑살랑 흔들며 6층에 위치한 식품관으로 향했다. 최종 목적지는 샴페인 바. 맑고 청량한 기포가 뽀르르 회오리치는 샴페인 한잔에 작은 치즈 플래터를 주문한다. 곳곳에 쇼핑 후 혹은 일과 후 나 홀로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서로 살포시 미소를 짓는다. ‘이 정도면 됐어. 이달도 수고했어. 잘 살고 있어’. 그렇게 다독이며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샴페인 한잔이 늘 그리웠는데, 최근 새로운 아지트를 발견했다. 성동구민종합체육센터 앞, 분주한 인파를 헤치며 빠른 걸음으로 돌진한다. 최근 오픈했다는 플래그십 스토어도, 온갖 패피들이 총출동한 듯한 팝업 스토어도 안중에 없다. 빨갛고 파란 네온사인에 가슴이 설레고 마는 플레이버타운의 아랫 집, 케익바의 문을 연다. 바에 자리를 잡고 샴페인에 곁들일 디저트를 고르며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겉바속촉의 딸기 코코넛 케잌, 고소하고 달콤한 밤 크렘브륄레, 그리고 나의 최애인 입 안에서 사르르르르 녹는 럼 티라미수. 천천히 음미하고 있자면 친절한 주인장이 말을 건다. 가벼운 안부인사에서부터 동네 맛집, 여행 이야기까지. 인생 뭐 별거 있나. 샴페인과 디저트 한 조각, 다정한 말 한마디면 충분한 걸.

입 안에서 구름처럼 사르르 사라지는 티라미수 ⓒ daheeseo2024
밤 크렘브륄레와 상큼한 바질 그라니타 ⓒ daheeseo2024
달콤한 디저트 선물 배달하는 중 ⓒ daheeseo2024
크리스마스 무드 가득 담은 케익바의 디저트 ⓒ daheeseo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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