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de Holiday Place

겨울의 원형을 찾아서: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에디션

크리스마스 저작권을 따진다면, 그 지분의 8할은 마땅히 독일에게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겨울의 낭만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아이콘이 이곳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16세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촛불을 켜며 시작된 크리스마스 트리(탄넨바움 Tannenbaum), 함부르크의 신학자가 아이들을 위해 고안한 대림절 화환(아드벤츠크란츠 Adventskranz), 그리고 광장에 모여 온기를 나누던 크리스마스 마켓(바이나흐츠마르크트 Weihnachtsmarkt)까지. 독일은 단순히 겨울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발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인에게 크리스마스 마켓은 단지 쇼핑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오후 4시면 해가 지는 독일(특히 북부)의 길고 혹독한 어둠을 견디게 하는, 일종의 ‘생존 리추얼’이다. 춥고 어두운 광장에 환한 등불을 켜고, 뜨거운 글뤼바인으로 몸을 데우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 독일어 ‘게뮈틀리히카이트(Gemütlichkeit 아늑함, 소박한 행복, 함께하는 훈훈함)’는 바로 이 차가운 공기와 따스한 와인 사이에서 완성된다.

가장 농밀한 독일의 겨울을 경험하고 싶다면 다음의 6가지 좌표를 기억하면 된다.


1. 크리스마스 마켓의 정석, 뉘른베르크 (Nürnberg)

크리스마스 마켓의 원형이 궁금하다면 뉘른베르크가 답이다. 뉘른베르크의 크리스트킨들마크트(Christkindlesmarkt)는 1600년대부터 이어져 온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의 교과서 같은 곳이다. 이런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건 ‘엄격함’에 있다. 뉘른베르크 시는 전통을 지키고자 플라스틱 트리나 화환, 요란한 네온사인, 녹음된 캐롤 등 ‘모던 터치’를 금지한다. 전통에 따라 목재 가판대를 세우고, 그 위에 뉘른베르크 시 및 프랑코니아 지역을 상징하는 컬러인 붉은색과 흰색의 줄무늬 천을 드리운다. 통일된 미감이 주는 클래식함. 뉘른베르크가 400년 넘게 ‘크리스마스 마켓의 표준’으로 불리는 이유다.

Must Eat 손가락만큼 작고 가늘며 마조람 향이 강한 뉘른베르크 소시지 그리고 이걸 3개나 빵에 끼워 파는 드라이 임 베글라(Drei im Weggla)
Check! 행운을 빌어주는 자두인형 츠베치게맨레(Zwetschgenmännle)를 기념품으로 챙길 것.
📍Nürnberger Christkindlesmarkt www.christkindlesmarkt.de

2. 600년의 시간이 쌓인 겨울 왕국, 드레스덴 (Dresden)

검게 그을린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묵직한 역사의 깊이를 증명하는 드레스덴 구시가. 그 장엄한 건축물들 사이로 들어서면, 광장 한가운데 우뚝 솟은 14.6m 높이의 거대한 바이나흐츠피라미데(Weihnachtspyramide, 크리스마스 피라미드)가 가장 먼저 여행자의 시선을 붙든다. 1434년 시작된 독일 최고(最古)의 마켓, 슈트리첼마르크트(Striezelmarkt)의 심장이다. 에르츠게비르게 광산 지역의 목공예 전통이 깃든 이 피라미드는, 층층이 배치된 인형들이 촛불의 열기로 회전하며 마치 거대한 오르골 속에 들어온 듯한 환상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곳은 우리가 사랑하는 겨울 빵 ‘슈톨렌’의 고향이다. 매년 12월 무려 4톤이나 되는 거대한 슈톨렌을 자르는 축제가 열리며, 엄격한 품질 인증을 통과한 베이커리만이 ‘드레스데너 슈톨렌(Dresdner Stollen)’이라는 이름을 걸 수 있다.

Must Eat 드레스덴 슈톨렌 품질 씰(Dresdner Stollen Siegel)이 붙은 오리지널 슈톨렌 한 조각과 작센 지방 전통 쿠키인 풀스니츠 페퍼쿠헨 (Pulsnitzer Pfefferkuchen)
Check! 12월 두번째 토요일에 열리는 슈톨렌 축제. 거대한 슈톨렌을 썰어 나누는 성대한 퍼레이드를 놓치지 말 것.
📍Dresdner Striezelmarkt striezelmarkt.dresden.de

3. 항구 도시의 낭만, 함부르크 & 뤼벡 (Hamburg & Lübeck)

독일 북부의 크리스마스에선 진한 바다향과 독특한 항구 문화를 만날 수 있다. 함부르크 시청 앞 마켓(Rathausmarkt)은 독일의 전설적인 서커스 단’서커스 론칼리’가 연출을 맡아 1900년대 초반을 재현한 레트로 감성의 무대를 만든다. 특히 하루 세 번, 산타클로스가 썰매를 타고 시청 지붕 위 하늘을 가로지르는 퍼포먼스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판타지를 실현해 준다.
여기서 기차로 45분 거리인 유네스코 유산 도시 ‘뤼벡’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벽돌 고딕(Brick Gothic)’ 건축양식으로 유명한 이곳에선 시간 여행을 경험한다. 중세 한자 상인들의 복장을 한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성 마리엔 교회 안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한 음악은 더없이 낭만적이다.

Must Eat 항구 도시 특유의 생선 요리와 뤼벡의 명물 니더레거(Niederegger) 마지판
Check! 함부르크 시청 위를 날아오르는 산타 쇼 시간 미리 확인하고 방문하기(16, 18, 20시).
📍Historischer Weihnachtsmarkt auf dem Rathausmarktresdner https://www.hamburger-weihnachtsmarkt.com/
📍Lübecker Weihnachtsmarkt www.luebeck-tourismus.de

4. 우아함과 파격 사이의 힙 앤 시크 베를린 (Berlin)

베를린의 크리스마스는 극과 극의 취향이 공존한다. 클래식을 원한다면 젠다르멘마르크트(Gendarmenmarkt)로 향한다. 베를린 시내에서 가장 우아한 건축물 중 하나로 불리는 프랑스 돔(Französischer Dom)과 독일 돔(Deutscher Dom)사이, 하얀 텐트 아래서 미슐랭 셰프의 요리와 샴페인을 즐길 수 있다. (단, 올해의 경우 광장 보수 공사로 인해 인근의 베벨광장에서 열린다).
반면 베를린의 ‘힙’을 느끼고 싶다면 독일은 물론 유럽의 창작가, 예술가, 디자인 브랜드가 모이는 ‘홀리 쉿 쇼핑(Holy Shit Shopping)’이 정답이다. 낡은 발전소나 클럽 같은 공간에서, 캐럴 대신 디제이가 말아주는 비트를 온몸으로 느끼며 디자이너들의 아트워크와 같은 특별한 선물을 살 수 있다.

Must Eat 젠다르멘마르크트의 고급 커리부어스트와 샴페인 그리고 오이스터
Check! 두 개의 마켓 말고도, 도시 곳곳에 흩어진 80여 개의 마켓을 한눈에 볼 수 있는 ‘VisitBerlin.de’의 크리스마스 마켓 지도를 참고해 다양한 마켓을 탐험해 볼 것.
📍WeihnachtsZauber Gendarmenmarkt www.weihnachtsmarkt-berlin.de
📍Holyshit Shopping www.holyshitshopping.de

5. 호수 위 작은 섬에 펼쳐진 환상 동화, 킴제 호수 프라우엔인젤 (Fraueninsel)

육지를 떠나야만 만날 수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다. 먼저 뮌헨 근교 킴제(Chiemsee) 호수로 향한다. 여기엔 바이에른 주 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루드비히 2세’의 성이 있는 헤렌인젤(신사의 섬)과, 고요한 수녀원이 있는 프라우엔인젤(여인의 섬)이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바로 프라우엔인젤에서 열린다. 오래된 증기 기차(Chiemseebahn)를 타고 항구에 도착해 배로 갈아타는 여정부터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여행길의 끝에 만나는 섬은 세상과 한참 떨어진 듯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1200년 된 역사의 프라우엔뵈르트 수도원(Kloster Frauenwörth)을 중심으로 90여 개의 가판대가 섬 구석구석을 수놓고, 클래식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에 듣는 전통 음악까지 곳곳에서 공연이 펼쳐지니 천천히, 하루를 오롯이 보내도 좋겠다.

Must Eat 호수에서 갓 잡은 신선한 연어/송어과의 생선 렌케(Renke)를 훈제해 빵에 끼워 파는 렌케 피슈브뢰첸(Renke Fischbrötchen). 그리고 수녀들이 직접 빚은 ‘수도원 리큐어(Klosterlikör)
Check! 프라우엔인젤 크리스트킨들마르크트(@fraueninsler.christkindlmarkt) 인스타그램을 통해 현지 교통편 및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서 스케줄을 짤 것.
📍Christkindlmarkt auf der Fraueninsel www.christkindlmarkt-fraueninsel.de

6. 검은 숲이 감춘 깊은 비밀, 호흐슈바르츠발트 (Hochschwarzwald)

독일 남서부, 전나무가 빽빽해 ‘검은 숲(Schwarzwald)’이라 불리는 이 거대한 숲은 겨울이면 외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된다. 그중에서도 여행자들이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는 곳은 숲의 가장 깊은 틈, 라벤나 협곡(Ravennaschlucht)에 숨겨져 있다.
빨간 기차가 가로지르는 40미터 높이의 육중한 돌다리 아래, 수십 개의 오두막이 옹기종기 모여 불을 밝히는 모습은 마치 비밀 결사대의 모임처럼 은밀하고 신비롭다. 이 풍경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독일에서 가장 ‘입장하기 어려운’ 마켓 중 하나로, 반드시 온라인 사전 예매를 거쳐야 하며 지정된 셔틀버스를 타야만 숲의 입구에 닿을 수 있다. 철저히 준비된 자만이 이 비밀스러운 세계에 입장할 수 있다.
풍경만 압도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나무 인형으로 재현한 ‘크리펜파드(Krippenpfad, 구유 산책로)’를 따라 숲속의 고요한 사색을 즐길 수 있고, 아이들을 위한 ‘마법의 숲 산책로(Kinderzauberpfad)’도 마련되어 있어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한다.

Must Eat 슈바르츠발트 지역 특산 훈제 햄과 숯불에 구운 송어 요리
Check! 온라인 예매 필수(현장 구매 불가). 티켓은 보통 10월 중순에 오픈되는데, 오픈 직후 주요 시간대가 매진되니 알람 설정이 필수다.
📍Weihnachtsmarkt in der Ravennaschlucht www.hochschwarzwald.de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12월 24일 오후 2시면 거짓말처럼 문을 닫는다. (베를린 등 대도시는 연말까지 연장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론 그렇다.) 누군가는 그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겠지만, 독일인들에게 이 ‘멈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성스러운 신호이자 약속이다.

어쩌면 크리스마스 마켓의 진짜 매력은 그 한정된 시간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25번째 창문을 열 수 없는 어드벤트 캘린더의 아쉬움이 내년을 기약하게 하듯, 오늘의 안녕은 다음 겨울을 위한 새로운 카운트다운이니까.

마음속에 켜진 불빛이 꺼지기 전, 다음 겨울을 위한 티켓을 미리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

댓글 남기기